|
카테고리
이전 블로그
최근 등록된 덧글
잘 읽으셨다니 제가 더 ..
by 우비 at 02/26 제가 스티븐킹을 좋아해.. by zizi at 02/13 감사합니다~^^ by 우비 at 01/17 ^^ 좋은 주말 보내시길.. by 류아 at 01/13 아~ 그러세요? 이글루.. by 우비 at 10/17 이글루 파인더
라이프 로그
|
2008년 06월 23일
문뜩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끄적이는 자는 사회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그런 쪽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회학적인 설명은 못하겠지만 생물학적으로 생물의 다양성이라는 근거로 설명할 때 결국 이러한 사회는 얼마 못 가고 망할 뿐더러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은 전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어쨌든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라는 존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렇듯 세상에는 나와 각기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그 개개인마다 다른 생각들로 이루어져있고 그에 따른 서로 다른 수많은 크고 작은 이익들이 상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모임들 간에도 역시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으며 지금 이 끄적임을 보고 있는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익이 상충되게 되면 서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다툼이 발생하게 된다. 지금 현존하는 생물들은 모두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얻으려는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이고 지금도 살아 남으려는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 반대로 이러한 경쟁에서 진 패배자들은 천천히 열렬하고 처절한 싸움터에서 하나둘씩 사라져서 표면에서 바닥으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이익 상충에서 경쟁으로만 해결하게 되면 항상 새로운 경쟁자와 끊임없는 싸움만 연속적으로 꼬리를 물고 물어 길게 늘어질 뿐이다. 오늘은 승리를 해서 살아남았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정작 자신이 얻은 이익이 초라하고 작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힘의 지배,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닌 모든 인격체의 존중이라는 이성과 사고가 존재하는 인간 사회에서 경쟁에서 진 패배자를 위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얻으려고 한다면 힘으로 눌러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방법이 최선의 선택이다. 아무리 앞에서 말했듯이 이성과 사고가 존재하는 인간 사회라고 해도 여전히 이러한 힘의 지배 논리에 따른 이익 상충 해결방법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가장 합리적인 이익 획득의 방법은 결국 상호간의 양보와 절충이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얻을 수 있는 총이익은 같지만 경쟁의 결과에서는 어떻게든 한 쪽이 승자가 되면, 다른 한 쪽은 어쩔 수 없이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반면 양보와 절충이라는 방법을 쓰게 되면 승자는 없겠지만 또한 패자도 없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둘 다 총이익은 같지만 순이익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경쟁의 결과에서 승자는 100%의 이익을 가져가지만 패자는 -100%의 이익을 가져가면서 순이익은 0%가 된다. 하지만 양보와 절충의 결과에서는 서로 50%의 이익을 가지고 가면서 순이익은 100%가 된다. 끄적이는 자 개인적으로는 경쟁하면서 그동안 수고와 노력의 대가라든지 다친 것들에 대한 보상으로 비록 순이익은 0%일지는 모르겠으나 승리한 내가 100%의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 뭐 어떠냐는 생각도 들지만 사회는 점점 합리적인 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익 상충이 있을 때 양보와 타협을 하는 것을 우리는 타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 '타협'이라는 단어에 정확한 뜻을 아는 것보다는 아주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타협'이라고 하면 뭔가 내가 상대방에게 굴욕적으로 모든 것을 다 내주는 것 같이 느껴지고,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다 준 다음에 비굴하게 상대방에게 달라붙어 조금 떼어받는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는 패배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패배자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분들이 잘못된 행동을 고치려는 반성의 기미 없이 여전히 계속해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러한 고정관념이 깊게 박혀서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옳지 않은 것에, 원치 않는 힘에 의해서 타협의 형식으로 포장된 경쟁의 패배는 타협이라고 불러서도 안 되고 봐서도 안 된다. 하지만 정말로 순수한 상호간의 이익 상충 관계에서 서로 간의 평등한 위치에서 양보와 절충이 바로 타협이다. 그러고보면 그동안 우리나라에 뛰어난 협상가, 타협을 주업무로 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박힌 또다른 이유가 아닐까? 어디가서 협상만 했다고하면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어오는게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빼앗기고 오는 상황이었으니 그런 고정관념이 생길만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협상가가 나올 수 없는 이유는 타협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고정관념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양보나 절충을 친근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풍조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이, 지위 등의 많고 적음 혹은 높고 낮음에 따라 타협이 아닌 것을 타협이라고 하는 경우와 지나치게 경쟁을 유도하고 자극시키는 것도 타협이라는 것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놓고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부 씻어내고 본연의 의미로 싹을 틔우는 지금 상황은 매우 척박한 토양에서 비옥한 작물을 얻으려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우리가 흔히 "넌 이미 사회와 타협했어."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과연 이 때의 타협이 정말 제대로 된 의미의 타협인지 한번쯤 다시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타협은 순이익이 100%가 되는 최소한 50%의 이익을 가져가는 그러한 상황이다. 정말로 사회와 타협을 통해서 나만의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라면 타협이겠지만 단지 사회의 커다란 힘에 쓸려서 무릎을 꿇어서 내 이익은 찾아볼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타협이 아니다. 타협이 아닌 것을 타협이라고 불러달라고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순간 결코 이것만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익 상충의 상황도 있을 것이다. 정말 지금은 오로지 나만 이익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때면 과감히 경쟁의 싸움터에 뛰어들어서 승리를 쟁취하는것이 결코 나쁘다거나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쁘거나 옳지 않을 수도 있다. 타협의 카드를 내놓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해서 처리하는 것도 훌륭한 협상가가 지녀야할 자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경쟁해서 상대방의 이익을 빼앗아 나의 이익으로 만들어야하는 상황도 있지 않은가! 당장 예를 든다면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서로 그 연인의 사랑을 얻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타협의 카드를 꺼내는 협상가라면 혹시 운이 좋아서 결과적으로 연인의 사랑을 얻을진 몰라도 과연 그 사랑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끄적이는 자 역시 만약 이런 상황에서 경쟁에서 져서 패배자가 되어서 바닥에 가라앉을지라도 절대 타협의 카드는 꺼내지 않을 것이다. 특히 바로 당신의 사랑을 쟁취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 끄적이는 자, 우비(woobi@hanmail.net) - 이 문서는 '정보공유라이선스 2.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