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13일
[安經]공포소설과 종교소설의 만남
참으로 오랜만에 '安經'을 끄적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製作所'에서 끄적이는 것이 예전 같지 않음은 이미 '製作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더 잘 아실테고, 솔직히 '安經'은 거의 '무단방치' 수준에 가까웠지 않은가. 이런 끄적이는 자가 '安經'을 갑자기 끄적이려는 것이 보기 싫었는지 컴퓨터는 어찌 자동으로 꺼져버려서 주루룩 끄적였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다시 끄적이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에 끄적이다 보니 예전에 썼던 '安經'을 어떤 순서대로 끄적였는지, 처음은 어떻게 시작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뭐 그렇다고 언제는 순서를 정하고 규칙을 정하고 모든 것을 정리해서 끄적이는 사람은 아니지만... 게다가 처음 '安經'이라는 단어를 단 끄적임을 올린 예전의 그 때처럼 돌아간 것 같다. 오죽하면 제목도 지금껏 뭔가 강한 충격을 남기려는 것이 아닌 자극적인 것은 하나도 없는 이런 제목을 붙였겠는가!
어떻게 되었든 '安經'은 '安經'이니까 우선 작품 소개부터 해보도록 하겠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끄적이는 자가 고의는 아니었지만 손에 넣은지는 오래되었으나 그동안 손에 잡지 못했던 작품으로 이미 '安經'에는 여러 번 등장하여 거의 '安經'의 반 이상은 이 작가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는 스티븐 킹이 낸 작품이다. 제목은 『데스퍼레이션』으로 원제도 『Desperation』이다.
우선 작품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끄적이는 자가 너무 오랜만에 작품을 접해서인지 아니면 단지 갑자기 원래 메마른 끄적이는 자의 감성이 살짝 물기를 머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끄적이는 자가 영화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한 편의 잘 만든, 뛰어난 영상 효과를 가진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끄적이는 자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이러한 부류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러한 감각은 끄적이는 자에게 색다름을 안겨주기에는 충분했다.
이제 다시 작품에 대하여 배경과 간단한 줄거리를 살펴보면, 서로에게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여동생에게 물건을 부쳐주기 위해서 황량한 길을 지나가던 한 쌍의 부부, 올해도 어김없이 색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려는 단란한 네 식구, 자신의 마지막 열정을 담은 책을 쓰기 위해서 오토바이에 오른 늙은 작가는 한 작은, 아니 아무도 살지 않는듯한 광산 마을의 거구의 경찰관에 의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거의 끌려가다시피 연행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죽이려는 경찰관의 공포에 맞서기 위해 전에는 특벼한 믿음이 없었으나 가장 친한 친구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는 특이한 경험으로 하나님과 '거래'를 한 소년과 그 주변 인물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를 막으려는 공포의 그림자는 점점 더 커져가는데...
'製作所'를 여러번 찾아오셨거나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미 간단한 줄거리만 봐도 대충 어떠한 이야기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전개 방식은 아주 특이해서 그나마 많은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安經'을 끄적일 정도로는 읽은 이 끄적이는 자도 상당히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나 시선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 시간을 초월해서 적절하게 독자로 하여금 작품의 흐름을 따라올 수 있을만한 정도의 혼란을 주면서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그러한 전개방식은 과연 작가의 능력에 감탄사를 남발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이번 작품을 그냥 일반적인 앞서 끄적이는 자가 이야기 했던 전개 방법으로 했다면 설마 끄적이는 자가 그만큼 감탄사를 날렸을까?
비록 하나님과 '거래'를 통하여 믿음을 가진 소년과 처음에는 그 믿음을 부정하다가 결국 믿음을 갖게 되고, 다시 찾게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본다면 이번 작품은 지극히 종교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작품 내내 '믿음'이라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상대, 존재하지 않는 상대에 대하여 벗어나려고 하는 인간들이 절대적인 구원자를 찾는 것을 이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면 어느 누가 종교소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날릴 정도니까 말이다.
어쩌면 작가가 일부러 독자로 하여금 종교적인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직설적으로 완전히 드러내놓기보다는 공포라는 옷을 입혀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끄적이는 자처럼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또 단순한 공포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주는 한 편의 잘 짜여진 공포소설이니까...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지 않는가!
이번 작품에서도 마을에서 벗어나 공포를 이겨낸 살아남은 자 모두가 승리한 자이겠지만, 가장 승리한 자는 자신의 상사가 보낸 이상한 구조 요청을 받고 마을로 자진해서 들어간 용감한 부하와 그 마을로 가는 길에 만난 '귀염둥이' 아가씨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시험'인지 아니면 '악마의 유혹'인지는 몰라도 두 번이나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의지를 하면서 그 시험을 무사히 통과를 하였다는 것이 어찌 대단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에도 말하고자 했던 것 같으나 그 부분은 독자에게 크게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서 끄적이는 자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더 큰 주제인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충분했지만 어차피 살짝 꺼낸 이야기라면 그냥 잠깐 맛만 보여주고 갈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시식은 해보도록 권해야하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환경오염에 대한 이야기는 썩어가는 시체냄새와 부스러지는 뼈, 바닥을 기어다니는 독거미와 전갈들로 인해서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참으로 아쉽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安經'을 마무리할 때 쓸만한 문구 하나도 끄적이는 자에게 남기고 가지 않았다. 솔직히 너무 오랜만에 쓰는 '安經'인데 시작은 조금 순서없이 뒤죽박죽으로 하더라도, 아무리 끄적이는 자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정리해서 끄적이는 자가 아닐지라도 뭔가 마무리는 짓고 가야할텐데 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떠한 유혹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강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방향이든 그건 상관없이, 얼마나 강하느냐는 그 각자에게 달렸겠지만... 허나 한 번쯤은 유혹도 당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나?
- 끄적이는 자, 우비(woobi@hanmail.net) -
# by 우비 | 2008/02/13 12:29 | 우비의 安經倉庫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