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3일
[끄적임]어디 오르는 것이 물가뿐이랴?
'학력 인플레'니 '스펙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언론에서 연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아마도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와 더불어 계속 주목받고 있던 청년 취업 문제가 합쳐지면서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을 할 수 있는 연령대의 고학력 미취업자가 넘쳐나고, 조금이라도 취업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온갖 자격증을 따려는 모습이 그들과 같은 연령대에 있는 끄적이는 자이지만 씁쓸하기만 하다.
게다가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서 높은 학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법학전문대학원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 몰리는 고급 인력들의 모습은 과연 제대로 된 사회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물론 직장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다달이 국가에서 본봉과 지방정부에서 수당을 받는 끄적이는 자이기 때문에 자기 배 부른 소리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본격적인 끄적임에 앞서 지금도 취업 전쟁의 최일선에서 고생하고 있는 수많은 취업희망자들께 죄송하다는 사과부터 올린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물론 청년 취업 문제가 하루이틀 사이에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꾸준히 문제가 될 요인이 존재해왔었고, 이러한 한 요인에 의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얽히고설켜서 복합적으로 작용해왔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암에도 불구하고, 요인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지금껏 문제가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청년 취업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여러가지 요인들을 크게 세가지 부류로 구분해보면, 개인적 요인, 사회적 요인, 시스템적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우선 개인적 요인들부터 살펴보겠다. 첫째, "배우지 못한 한으로 의한 대리만족 맹도적 학구열"이다. 솔직히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있는 요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급하였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로 배우지 못한 것이 가장 많겠지만 기타 다른 이유로도 배우지 못했던 부모 아래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아무래도 상대적 박탈감에 의한 피해를 받지 않게 한다는 명목으로 맹도적 학구열에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자기 자신만의 꿈이 없는 세대와 꿈은 있었지만 그 당시 뒷받침이 안 되서 이루지 못한 세대의 충돌"이다. 이는 어쩌면 앞서 언급했던 부분과 별다르지 않은 내용일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정작 자신의 꿈이 아니라 부모의 희망을 주입받아서 자라온 아이는 결국 끝까지 자기 자신만의 꿈을 꾸지도 못하고 평생 꿀 줄도 모르는 성인이 된다. 그러나 꿈은 항상 꾸지만 이룰 수 없었던 기성세대가 주된 사회는 성인이라면 당연히 자기 자신만의 꿈 꾸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하여 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서 능력을 보여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 세대별 충돌이 발생하고 이것들이 꿈을 꾸지 못하는 세대들의 취업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셋째, "남들과 달라야한다면서 결국 남들과 똑같이 쫓아따라가는 이율배반적 행동과 1가족 1자녀 시대의 부적절한 결합"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특성이라고 부르는게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우리나라 국민이라는 점과 무한 경쟁시대의 돌입이 오묘하게 맞물리면서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들이 학원 스트레스로 온갖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모습이 되었다. 이미 이 끄적임을 보고 있는 당신이 겪은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옆집 사는 친구가 어느날 학원을 하나 더 다니게 되면 어느새 나도 그 친구가 다니는 학원을 다니고 있고, 또 다른 친구가 다른 학원을 하나 더 다니게 되면 나도 어머니 손에 이끌려 학원 문 앞에 서있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내 자식만은 다른 아이들과 달라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러져 있는 부모에 1가족 1자녀 시대가 불난 집에 기름을 쏟아부은 것이다.
개인적 요인은 이 정도로 살펴보고 다음은 사회적 요인을 알아보겠다. 사회라는 것이 개개인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위의 개인적 요인을 가진 개개인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면서 단순히 '1+1'의 덧셈효과가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요인을 만들어낸다. 첫째, "소위 '간판', '학교 서열화'에 의한 신 계급주의"이다. 모든 우리나라 국민은 헌법 앞에 평등한 존재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계급사회가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글자 몇 개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버리고 보이지 않는 계급이 되어 사람을 단칼에 난도질해버린다.
둘째, "물질만능주의에서 '학력 = 능력'이라는 이상한 방향으로의 개념변질"이다. 물론 학력이 높을수록 능력이 높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단순히 학력이 높다고 해서 그 사람이 능력까지 항상 높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능력 자체가 돈이라는 한가지 기준으로 평가되는 물질만능주의에서 학력이 능력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학력은 낮지만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은 높을 수도 있고, 학력은 높지만 능력은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단순 비교를 할 수 없는 대상을 그런 방법으로 비교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시스템적 요인을 언급하겠다. 앞서 나온 개인적 요인이든 사회적 요인이든 결국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이므로 어느 순간에 갑자기 급격하게 변화하거나 사라질 수는 없는 요인들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뼈대가 세워지게 되면 그 뼈대를 주축으로 붙는 살은 얼마든지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학력의 높낮음으로 한 인격체를 도매급으로 평가하는 사회와 이를 바탕으로 '땜방질' 교육제도 개혁시스템"이다. 소폭 개혁이든 대폭 개혁이든 제대로 개혁을 이루었다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下石上臺(하석상대)식의 '땜방질' 교육제도 개혁시스템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게다가 교육은 百年之大計(백년지대계)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관장하는 수장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朝三暮四(조삼모사)격으로 바뀌게 되면서 멈추지 않는 혼란만 조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 "실질적인 능력과 소질보다는 숫자 몇자로 된 시험성적과 서류 위에 쓰여진 글자 몇 자가 더 우선기준인 기업체 인사시스템"이다. 모든 사람의 능력과 소질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므로 一言之下(일언지하) 할 수는 없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다. 게다가 무엇을 비교하는 대상이 객관적인 자료라면 손쉽게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객관적인 자료만으로 사람을 평가해버리는 것은 많은 것을 잃는 행동이 아닐까? 지방에 있는 국립대를 나와서 이력서를 보지도 않고 곧장 휴지통으로 보내버린 그 사람이 서울에 있는 유명한 사립대를 나온 사람은 가지지 못한 벼랑 끝에 내몰린 기업을 살릴 능력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셋째, "하나의 완성된 작품계획 없이 좋다고 평가된 것들을 누더기처럼 기워내는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몰상식한 행동"이다. 이는 앞서 '땜방질' 교육제도 개혁시스템이랑 一脈相通(일맥상통)하는 것으로써, 다른 나라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정착된 시스템을 단지 평가 당시 좋다고 생각하여 바로 우리나라에 도입해서 시행한 것은 분명히 실패한다고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橘化爲枳(귤화위지)라는 가장 단순하고 극명한 결과를 알면서도 애써 무시해가며 이것저것 도입하는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한 장의 천으로 만들어진 이쁜 옷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해어지고 색이 바래져서 버려지게 되는데 굳이 색도 맞지 않은 여러 천조각을 기워서 만든 누더기를 입길 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비록 끄적이는 자가 소개한 여러 요인 역시 단순히 사회의 단편만 보고 생각한 短想(단상)이고 端想(단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눈에 바로 보이는 요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안 보이는, 숨겨둔 요인들을 더 찾으려는 노력만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지 않겠는가. 이 끄적임 역시 수많은 卓上空論(탁상공론) 중에 하나로 그냥 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끄적이는 자, 우비(woobi@hanmail.net) -
# by 우비 | 2008/12/23 17:41 | 우비의 製作所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