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02일
[安經]새로운 시대의 시작인가, 현 시대의 종말인가?
각종 신문, 방송매체를 통해 들리는 유전·생명공학의 발달, 줄기세포의 연구와 사용, 사람과 동물의 유전자 결합 시도 등의 이야기는 더이상 미래의 이야기도 단순히 흥미를 주는 공상소설 종이 속에서만 있는 이야기도 아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는 이야기다. 덕분에 어려운 과학용어도 실험결과도 전혀 생소하지 않고 대부분 사람들이 서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과학의 발전과 영상매체의 발전은 보다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것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얼마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알고 있다고 믿는 사실은 과연 사실일까? 진실로 알려진 사실의 끝은 어디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자들은 전세계에 흩어져 여러분의 눈이 모니터를 향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현미경의 접안렌즈에 대고 있거나 실험동물에 투약할 주사기 바늘을 향하고 있는 수많은 연구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수많은 사람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끄적이는 자가 추측하건데 없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단순히 사실이냐 아니냐라는 객관적인 질문이라도 말이다.
이번 '安經'에서 소개할 작품은 소설 원작보다는 영화로써 더 잘 알려진 『쥬라기 공원』의 작가인 마이클 크라이튼의 『넥스트』라는 작품으로 작년에 고인이 된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쥬라기 공원』이 멸종된 공룡들을 유전공학의 기술로 다시 살려냈다는 물론 사람이 죽고 다치기는 하지만 핑크빛 희망을 말했던 반면에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죽고 다친 사람들은 없으나 줄곧 회색빛 절망만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安經'에서 소개한 『어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주인공 없이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흐름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것처럼 이번 작품 역시 뚜렷한 주인공이 없이 서로 관계없는 듯한 사건들이 조금씩 겹쳐서 새로운 사건이 되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이다. 이야기 전개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으로 뭔가 스산하게 내려앉은 안개를 헤쳐가며 조금씩 결론을 찾아가는 작품에 익숙한 독자라면 조금은 작품 내 속도를 못 이겨낼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하는 너무 우연성을 보여주는 사건을 빼면 사건들은 크게 다섯 가지로 환자 몰래 암을 이겨내는 사이토카인을 분비하는 세포를 가지고 소유권을 두고 싸우는 사건,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 치료제의 우연한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 사건, 두 개 이상의 외국어로 욕을 하는 오랑우탄을 잡으려는 사건, 단순히 사람 말을 따라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앵무새의 납치 사건,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휴먼지' 아들의 입양 사건이다. 따지고 보면 그 다섯 가지 사건 중에서 세포주 소유권 사건과 유전자 치료제 부작용 사건을 제외하고는 전부 인간과 동물의 교잡, 유전자 결합에 관한 사건들로 이번 작품에서 결국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히 사람과 동물간의 교잡은 줄기세포 연구와 치료 뿐만 아니라 이식용 복제장기 연구, 생산으로 상당히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화두로 이번 작품에서는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으로 생각하는 능력과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과연 지금까지 그냥 아무런 비판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배아 혹은 태아줄기세포 연구나 생산이 종교적, 윤리적으로 문제시되면서 실험동물을 이용한 연구로 방향을 바꿔 아무런 내용 변경 없이 그대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과연 연구의 진행을 방해한 종교와 윤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지도 물어보게 만드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실험과 연구에 사용한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동물을 실험이 끝났다고 죽이는 것은 단지 실험재료를 폐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살인'에 해당되는 것인가? 눈도 없고 귀도 없는 배양접시에 담긴 세포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
특히 자신의 유전자 또는 세포를 이용하여 만든 교잡 실험동물이라면 과연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일까? 나도 모르게 태어난 내 유전자를 이어받은 '휴먼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유전자로는 침팬지가 아닌 사람이고, 외모로는 침팬지와 인간의 반을 닮은, 행동에서는 침팬지의 본능이 나타나며, 사람의 사고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동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이것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하며, 어떻게 봐야할 것일까?
끄적이는 자도 과학실험, 연구, 교육이라는 명분하에 수많은 실험동물을 희생시켰지만 사람의 세포나 유전자로 변형시킨 실험동물을 이용한 실험은 아직까지 해본 적이 없어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해본 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번 작품으로 언젠가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과학도로서,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하는 연구자로서 해야만 하는 고민과 질문을 미리 만나게 되었고 그만큼 해답을 구하는 시간을 벌게 된것이 아닐까.
작품에는 '황우석 박사 사건'도 짤막하게 기사로 나오는데 조금은 씁슬한 감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과학계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문제점에 대해서 끄적이는 자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거짓없이 직설적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하고 비판한 작가의 용기에 찬탄이 자연스레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부분에서 약간의 반전은 또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품 중 판사의 세포주 소유권에 대한 판결은 작가 자신의 의견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는데, 작품의 끝부분에 작가가 직접 쓴 생명·유전공학에 대한 충고 몇가지를 읽어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끄적이는 자 개인적인 소망은 적어도 우리나라의 모든 생명·유전공학 부분에 있는 과학자, 연구자들이 이 작품은 꼭 한번은 읽었으면 좋겠고, 온갖 연구에 작품을 읽을 시간조차 없다면 맨마지막 작가의 충고 몇 가지는 꼭 읽고 합리적인 비판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을 한 루이 파스퇴르가 아직까지 살아서 지금 이런 현실을 보고나면 과연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해보면서 이번 '安經'을 줄이고자 한다.
- 끄적이는 자, 우비(woobi@hanmail.net) -
# by 우비 | 2009/02/02 15:47 | 우비의 安經倉庫 | 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