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7월 27일
[끄적임]실패, 거절, 인내란 단어를 모르는 세대
하루가 머다하고 연일 좋지 않은 소식들만 TV 뉴스와 신문 등으로 접하고 있다. 굳이 이런 소식들이 아니라도 장마로 인하여 후덥지근한 날씨에 짜증도 나고 기분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데 말이다. 특히 이제 성추행, 성폭력, 성폭행은 사회 전반적으로 각계 각층에서 너무 많이 발생하여 특별한 뉴스거리도 안 되는 일상적으로 다가오려고 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 주말 신선하게 다가온 나쁜 소식은 인질극이었다.
여차저차 상세한 자초지종은 그 당사자가 아닌 이상 끄적이는 자가 알 수가 없겠지만, 여기저기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자면 여자친구랑 결혼을 하고 싶은데 여자친구 어머니가 반대를 극심하게 하자 설득을 위하여 여자친구 집을 찾아갔고, 때마침 입구에서 여자친구 어머니와 맞딱들이자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제지하는 여자친구 어머니 팔꿈치를 준비해온 흉기로 찔렀고 동맥이 끊어져서 과다출혈 상태가 되었으나 여자친구와 함께 집 안에 감금하어 인질극을 벌였고, 결국 응급처치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여자친구 어머니는 과다 출혈로 사망, 여자친구는 계속 감금하다가 다음 날 새벽에서야 여자친구가 설득하여 자수하면서 사건은 종결되었다는 내용이다.
어쩌다가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였는가에 대하여는 끄적이는 자가 이 쪽 분야에 전문가가 아닌 이상 특별히 왈가왈부는 하지 않겠다. 다만,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요인 중에 하나로 요즘 세대들이 가진 전형적인 정신적·사회적 문제를 거론해보려고 한다. 물론 언급한 문제들만으로 요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설명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근거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어쨌든 시작해보겠다.
우선 본격적인 끄적임에 앞서 미리 밝히는 부분은 끄적이는 자 역시 위 사건 장본인과 동일한 연령대이다는 것과 현재 10대부터 30대까지 연령대 중에서 형제, 자매가 없는 연령대에 속한 세대만이 해당되므로 끄적이는 자 본인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결과 끄적이는 자는 연령대는 동일하지만 해당되는 세대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되는 이 세대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살아오는 과정 내에서 자의적이든 또는 타의적이든 경쟁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그 경쟁 상대가 나랑 혈연 관계에 있는 사람이든 이름도 모르는 생면부지인 사람이든 말이다. 끄적이는 자가 짧은 생각으로 생각해 봤을 때는 자의적으로 경쟁을 피했다기 보다는 부모들이 일부러 경쟁을 피하도록 이끈게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왜? 내 아이는 그 누구보다 소중하니까. 내 아이가 경쟁 속에 내버려두면 피가 흐를 수도 있고 스트레스 속에 고통을 받을테니까. 그런 꼴은 죽어도 못 보니까.
덕분에 이 온실 속에서 자라온 세대들은 온실 속 환경을 사회 전체라고 여기고 살아가게 된다. 진짜 사회는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계속 부모들이 만들어준 온실 속에서 편하게 아무 걱정없이 자라다보니 알고 싶지도 않게 된다. 이 끄적임을 보고 있는 나와 당신은 이미 진짜 사회가 어떤 곳인지, 말로만 듣던 "무한 경쟁"이 어떤 것인지 이미 오래전에 직접 몸으로 체험했을 뿐만아니라 뼈 속에 깊게 새겨져 있는데 말이다.
1:1이든 1:다든, 중하든 사소하든 세상에 경쟁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경쟁을 모르다 보니, 경쟁에 따르는 "실패", "거절", "인내"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모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경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얻고 싶은 것보다 얻을 수 있는 것이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게다가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것이 같기 때문에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이 바로 경쟁 아닌가.
결국 내가 경쟁에서 승리하여 얻고자 하는 것을 내 손에 획득했다면, 나와 경쟁 상대였던 다른 누군가는 경쟁에서 "실패"하여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된다. 반대로 내가 경쟁에서 "실패"하여 얻고자 하는 것을 내 손에 넣지 못한다면, 나와 경쟁 상대였던 다른 누군가는 내가 그렇게 원했던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내가 싫든 좋든 어쨌든 경쟁이 시작되면 언젠가는 끝나게 되고, 그러면 필연적인 결과로써 승리와 패배, 승자와 패자가 정해지게 된다.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며 내가 인정하기 싫다고 해서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는 없다. 나 혼자만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일 뿐.
또한 경쟁을 통해서 힘겹게 내가 노력하여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본 적이 없는 이 세대는 항상 원하면 원하는대로 족족 그 누군가가 장만하여 거저 주었기 때문에 받는 승낙에만 익숙하지 "거절"을 당해본 것은 익숙하지 않다. 실제 세상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전부다 이루어지는 마법 램프 또는 마법 양탄자가 아니다. 게다가 평생 내 옆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공짜로 챙겨주는 그런 사람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번 인질극이 "거절"에 대한 너무 경험을 많이 하여서 더이상 "거절"에 대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에 대한 표출에 의해서 발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익숙한 것에 대하여 크게 반하여 강력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크게 반하여 강력한 행동을 하는 빈도가 훨씬 높지 않을까? 익숙하지 않다는 것 자체가 강력한 행동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는가.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하여 내가 아닌 누군가가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절"에 대한 경험을 조금이라도 경험했었더라면, 아무리 여자친구 어머니가 둘 사이 결혼을 반대한다고 해도 보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고 대응을 하였을지도 모른다. "거절"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내가 원했던 것은 주변에서 얻게 해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경험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익숙한 사람보다 더욱 큰 박탈감을 안겨줄 것이고 당황할 것이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경쟁이 항상 단시간에 끝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이틀 또는 한 주, 한 달, 또는 1년, 그 이상 또는 평생동안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에서 빠져나오는 기간 동안 참아야하는 "인내"는 결국 경쟁에 뛰어들지 않은 세대는 도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러한 "인내"는 책이나 영상 등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성격도 아니며, 결국은 스스로 직접 체험하고 느껴야만하는 것이다.
옛말에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도 있다. 칼을 휘두르고, 과다출혈로 죽이려고, 여자친구 어머니만 만나러 여자친구 집에 찾아간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결과는 이미 일어났고 다시 되돌릴 수는 없는 사실이다. 여자친구 집에 찾아가면서 칼을 품 안에 챙겨서 간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지만, 그 당시 자신이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는 여자친구 어머니에게 꼭 칼을 휘둘렀어야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때 세 번, 아니 한 번만 더 참았더라면 여자친구 어머니도 아직 살아있을 것이고, 여자친구를 감금하고 인질극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며, 자수하고 구속 영장을 받아서 판결을 기다리는 범법자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끄적이는 자가 맡고 있는 자리가 있어 올해 새로 들어온 후배들을 살펴보아도 "인내"는 상당히 거리가 먼 단어라고 느껴졌었다. 남보다 항상 더 빨리를 외치는 사회이다보니 느림, 느려짐은 죄악으로 여겨지고 나에게는 없어져야할 단어라고 여기겠지만, 기다림은 결코 느림, 느려짐은 아니다는 것까지 억지로 잊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쨌든 끄적이는 자는 이번 인질극이 과연 그 당사자 본인에게만 잘못이 있냐는 질문을 끝으로 하고 싶다. 물론 개개인 스스로 가진 정신적인 문제에 대하여 잘못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만약 개개인이 가진 정신적인 문제를 주변에서 알고, 같이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이 있었더라면 그 부분만큼은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은 이번 인질극은 당사자인 그에게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준 그를 낳고 기른 부모, 그리고 그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잘못이 있지 않을까...
많은 위인들은 "실패", "거절", "인내"에 대하여 자조적인 위치에서 바라보고 충분히 인정하고, 당당하게 받아들였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는 명언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명언도 그냥 그런 글자 몇 자로 배우고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도 모른체 그저 외우는데 급급한 우리 교육 환경도 이번 사건에 대한 공범이 아닐 수 없다.
- 끄적이는 자, 우비(woobi@hanmail.net) -
# by 우비 | 2010/07/27 17:20 | 우비의 製作所 | 트랙백